한강뷰
제11화 명찰을 떼다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는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국내 전설적 코인 투자자.”
“그믐달, 선물거래 수천억 수익 인증.”
짧은 문장들이 눈에 박혔다.
스르르 화면을 끌어내리다가 박진수는 손을 멈췄다.
‘조한결이… 그 그믐달?’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술기운은 이미 가셨지만 속은 여전히 거북했다.
휴대폰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내가 뭐라고 훈계질을….’
어젯밤 술자리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도 열심히 모으면 언젠가 한강뷰 아파트 살 수 있어.”
그때 조한결이 따라주던 잔.
웃으며 “네, 형.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던 표정.
박진수는 얼굴을 움켜쥐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삐걱 소리를 냈다.
회사 복도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팀장과 마주치지 않으려 일부러 우회로를 골랐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손끝도 무거웠다.
화면을 켜자마자 사내 메신저 알림이 떴다.
[인사팀 공지] 희망퇴직 지원자 면담 일정 안내
박진수는 메일 제목을 몇 번이고 읽었다.
손끝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내용을 열었다.
“금주 내 개별 면담 일정이 잡힐 예정입니다.
대상자는 별도 안내 예정입니다.”
목구멍이 따가워졌다.
옆자리 동료가 휙 고개를 돌렸다가 시선을 피했다.
박진수는 노트북 화면을 덮었다.
복도 끝 인사팀 사무실 앞에 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인사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박 차장님 오셨네요.”
말끝에 미묘한 어조가 섞여 있었다.
테이블 위엔 희망퇴직 지원서가 놓여 있었다.
박진수는 서류를 바라보았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이게… 지금 당장 서명해야 하는 겁니까?”
인사팀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 물론 선택은 자유시지만…
현재 구조조정 대상자 중 한 분이신 건 아시죠.”
박진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서류를 넘겨보았다.
마지막 페이지.
서명란이 눈에 들어왔다.
펜을 든 손이 떨렸다.
“이렇게 쉽게 사람을 내보내는 건가요.”
인사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박진수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손끝은 다시 펜을 집어들었다.
‘어쩔 수 없어.
여기서 더 버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펜 끝이 종이를 파고들었다.
회사 건물을 나서는 발걸음이 허공을 떠도는 것 같았다.
출입게이트에서 명찰을 떼어 손에 쥐었다.
손바닥에 얹힌 명찰이 낯설었다.
한때는 이 명찰을 달고 뿌듯해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명찰을 가방 안에 넣으려다 말고 다시 꺼냈다.
손에 쥔 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리버바이성동 현관문을 열었다.
텅 빈 집안 공기가 싸늘하게 감돌았다.
현관 한쪽 구석에 아내가 두고 간 여행가방이 그대로 있었다.
식탁 위엔 메모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진수 씨, 나랑 아이는 친정에 있어요.
이 집, 이젠 우리 둘이 살기 어려워요.”
손끝으로 메모를 쓸어내렸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그러나 울음은 터지지 않았다.
그저 메모를 구기지 못한 채 손끝에서 내려놓았다.
천장에서 또다시 물방울 소리가 뚝뚝 떨어졌다.
소파에 주저앉아 스마트폰을 들었다.
민주당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헤맸다.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저는 끝까지 버팁니다.
이 집은 제 자존심입니다!”
글을 올리고 한참을 기다렸다.
반응은 거의 없었다.
댓글 두 개가 달렸다.
“형님… 이제 가족 생각하세요.”
“형님, 너무 고생 많으세요.”
박진수는 화면을 꺼버렸다.
손끝이 식어갔다.
탁자 위에 놓인 명찰을 바라보았다.
손에 쥐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나였나.’
명찰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천장에서는 여전히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괜찮아.
나는 싸우고 있다.’
혼잣말이 허공으로 퍼져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