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제12화 절벽 위의 집
텅 빈 거실.
조용한 공간에 물방울 소리만 맺혀 있었다.
뚝.
뚝.
천장 한쪽에서 떨어진 물방울은 바닥의 천으로 깔아둔 수건을 적시고 있었다.
박진수는 물든 수건을 걷어내며 중얼거렸다.
“다 뜯어야 한다고?”
관리사무소는 이미 천장을 일부 철거해야 한다고 통보해왔다.
윗집에서는 아니라고 했다.
전주인에게도 다시 연락을 해봤지만 돌아온 건 뻔한 대답이었다.
“전 임차인 아저씨는 그런 말 없었는데?”
“네, 없었어요. 하자 책임은 인수인계 시점으로 끝나는 거는 혹시 아시죠?”
피식거리던 전주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박진수는 이를 악물었다.
‘소송이든 뭐든, 다 해야지.’
그러나 현실은 간단하지 않았다.
거실 천장을 뜯는 순간 당장 거주할 곳부터 구해야 했다.
대체할 임시 거처, 비용, 복잡한 공사 일정.
‘그 돈은 또 어디서 마련하나.’
무엇보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 집을 내 손으로 고치지도 못하고 남의 도움을 받는 꼴은 더더욱 싫었다.
대출 상환 고지서가 도착했다.
박진수는 종이를 펼쳐 들었다.
고지서 한쪽 면에는 향후 30년간 빼곡히 이어질 상환 금액 일정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매달 350만 원.
그리고 이어지는 줄줄이 금액들.
손끝이 차가워졌다.
‘앞으로 30년…’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계좌를 확인했다.
잔고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나마 보유하던 삼성전자 주식도 일부 매도했다.
매도 확인 알림이 화면에 떴다.
그 알림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팔 게 또 뭐가 있지.’
안방 장롱을 열었다.
아내가 남기고 간 몇몇 물건들.
그중엔 아이의 작은 장난감 박스도 있었다.
손끝으로 박스를 쓸었다.
문득 생각이 났다.
‘피아노 학원비… 수영 강습비….’
이미 몇 주 전부터 자동이체는 중단되어 있었다.
문자 알림이 여러 번 온 뒤였다.
‘못 낼 건 또 뭐가 있나.’
계좌 이체 메뉴를 열었다.
손이 떨렸다.
아이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며칠 더 미루려던 마음을 접었다.
‘이거라도 먼저 내자.’
액수를 입력하고 송금 버튼을 눌렀다.
알림음이 울렸다.
‘그래. 일주일 늦었지만 그래도 됐다.’
그러나 묘한 씁쓸함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민주당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헤맸다.
글을 쓰려다 멈췄다.
지난번에 올린 글에는 댓글 하나 달려 있었다.
“형님… 이제 가족 생각하세요.”
의례적인 위로.
그 이상은 없었다.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집은 제 전쟁터입니다.
투기 자본과 싸우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화면은 그대로였다.
좋아요는 없었다.
댓글도 없었다.
박진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식탁 위엔 택배 박스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며칠 전 중고거래에 올려둔 커피 머신.
거래가 성사되어 포장까지 마쳤다.
택배 접수 예약 알림이 떴다.
박진수는 박스를 내려다봤다.
‘이제 팔 수 있는 것도 얼마 안 남았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천장에서 여전히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눈을 감았다.
문득 아내와 딸이 떠올랐다.
처가로 간 아내와 아이가 오히려 고마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이 곰팡이 냄새와 물비린내 가득한 집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드는 자신이 너무 괴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한켠에서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 안도감이 다시 죄책감으로 번졌다.
눈을 꼭 감았다.
‘나는 괜찮아.
나는 싸우고 있다.
이 집은 내 거야.’
그러나 속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집이… 정말 내 집인가.’
눈가가 뜨거워졌다.
박진수는 눈을 꼭 감은 채 숨을 길게 내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