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 제13화

한강뷰

제13화 쿠팡 유니폼

식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브라우저 화면에는 고용노동부 사이트가 떠 있었다.

실업급여 신청 페이지.
이미 몇 번을 들락날락했지만 신청 버튼은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손끝을 떨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뭐….’

한숨을 삼켰다.

클릭.

신청이 완료됐다는 알림창이 떴다.

박진수는 노트북을 덮었다.

‘그래. 잘한 거야.’

그러나 가슴 한켠이 서늘했다.

계좌를 확인했다.
실업급여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동안은 어떻게 버텨야 할까.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둔 지출 목록을 꺼냈다.
수입은 없는 상태.
남아 있는 잔고는 빠듯했다.

중고거래로 판 물품들도 한계에 다다랐다.
팔 수 있는 건 이미 거의 팔았다.

삼성전자 주식은 조금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쉽게 손을 대기도 망설여졌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한쪽에 켜둔 광고였다.

“쿠팡플렉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박진수는 화면을 클릭했다.

며칠 뒤.
쿠팡플렉스 앱을 깔고 가입을 마친 뒤 첫 배달 일정을 잡았다.

마트에서 장 본 물건들을 동네 곳곳으로 배달하는 일.

생각보다 준비물이 많았다.
유니폼도 지급받아야 했다.

박진수는 지정된 센터에 들러 유니폼과 장갑, 배송용 카트를 받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색했다.

유니폼 셔츠를 입고 캡 모자를 쓴 얼굴.
어딘가 낯설었다.

‘이렇게까지 하게 될 줄은….’

스스로에게조차 낯선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첫 배달날.
배송 앱에서 배정된 물량을 확인했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 다른 손에는 카트 핸들을 쥐고 출발했다.

초겨울의 찬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빌라가 많았다.
몇 번이나 계단을 오르내렸다.

박스를 들고 오를 때마다 숨이 거칠어졌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식은땀이 등에 밴 채로 겨우 배달을 마쳤다.

휴게 시간.
앉아 있던 벤치에서 숨을 고르며 스마트폰을 켰다.

민주당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그러나 더는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남들이 올린 글을 멍하니 내려볼 뿐이었다.

손끝이 멈췄다.

한참 동안 화면을 내려보다 스마트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하루가 끝났다.

박진수는 리버바이성동 현관문을 열었다.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들어왔다.

거실은 여전히 싸늘했다.

천장에서는 여전히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아내와 딸이 없는 집은 유독 더 공허했다.

그들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소파에 몸을 던졌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유니폼을 벗어 던졌다.

바닥에 쳐박힌 유니폼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눈을 감았다.

며칠 뒤.

배달 건수를 조금씩 늘렸다.
익숙해질수록 몸은 더 고단해졌다.

가족과의 연락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내에게서 오는 문자에는 답장이 늦어졌다.
전화는 피하게 됐다.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쿠팡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는 말을 입에 올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저 ‘괜찮다, 잘 지내고 있다’는 짧은 답장만 보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점점 횟수가 줄어들었다.

택배 상자를 들고 한강변 근처 고급 아파트 단지에 들른 날.
유난히 반짝이는 로비를 지나며 속이 쓰렸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유니폼 차림의 자신이 낯설고 초라해 보였다.

손에 든 택배 박스가 유난히 무거웠다.

배송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한강변을 따라 걷다가 잠시 멈춰 섰다.

저 멀리 강 건너 리버바이성동이 보였다.

‘나는 저기 사는데….’

가슴 한켠이 뻐근했다.

그때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새 배달 건 알림.

박진수는 모자를 고쳐 썼다.

‘계속해야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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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yu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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