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제15화 나는 남았다
가슴 한켠에 묵직하게 쌓인 고지서 봉투들이 탁자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박진수는 어느 것 하나 손을 대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봤다.
그중 가장 두꺼운 봉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OO은행 주택담보대출 연체 고지서]
그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집어 들었다.
봉투를 찢는 손끝이 떨렸다.
안쪽에는 깔끔하게 인쇄된 연체 안내서가 들어 있었다.
“귀하의 대출금 상환이 일정 기간 연체되었습니다. 계속 연체 시 법적 조치(임의경매 포함)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서늘한 문장이 눈에 박혔다.
한동안 눈앞이 흐릿해졌다.
며칠 동안 그는 모든 걸 미룬 채 배달만 반복했다.
앱을 켜고, 가방을 메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리버바이성동 집에는 점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그곳에 들어서면 숨이 막혔다.
천장에 맺힌 물자국, 바닥에 눅눅하게 퍼진 냄새, 텅 빈 거실. 모두가 그를 죄어왔다.
그러나 팔 수는 없었다. 팔아도 남는 게 없을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기하기 싫었다.
연체를 벗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하루 종일 배달을 돌며 손에 쥐는 몇 만 원으로는, 이 고리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내심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 더욱 숨 막혔다.
이제는 아내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그녀와 딸이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건 오롯이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전쟁이었다. 아무도 대신 싸워줄 수 없는 싸움.
그렇게 믿으려 애썼다.
그러나 연체는 멈추지 않았다.
하루는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유니폼이 몸에 착 달라붙었다.
현관문 앞에 다다랐을 때, 우편함이 열려 있는 걸 발견했다.
누군가 다녀간 듯했다.
그 안에 두툼한 등기 서류가 꽂혀 있었다.
박진수는 한참을 망설이다 그것을 꺼냈다.
[OO지방법원 임의경매 개시 결정 통지서]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몸을 가누기 힘든 채 소파에 주저앉았다.
서류 봉투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열었다.
“본건 부동산에 대하여 임의경매 개시 결정을 하였으니, 이에 따라 집행 절차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법원의 문장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박진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나는… 이제 점유자에 불과한 건가.’
문득 그 사실이 온몸을 내리눌렀다.
한때 당당하게 외치던 “내 집” 은 이제 경매 절차에 들어간 ‘채무자의 점유재산’ 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사실이 숨 막히게 다가왔다.
잠시 후, 스마트폰이 울렸다.
새 배달 알림이었다.
가방을 다시 메야 했다.
그는 유니폼을 주섬주섬 입었다.
축축한 땀냄새가 다시 코끝을 찔렀다.
거울을 스쳐 보았다.
눈가에 다크서클이 깊게 패여 있었다.
‘나는… 남았다.’
조한결은 두바이로 갔고, 이상훈은 쿠알라룸푸르로 떠났다.
그들은 자유를 택했다.
자신은 이곳에 남아 쿠팡 유니폼을 입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차이가 뼈에 사무쳤다.
배달 가방을 메고 다시 새벽 길에 나섰다.
한강변을 지날 때, 리버바이성동의 건물들이 어둠 속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그곳 불빛 하나하나가 더 멀게 느껴졌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이 집은 아직 내 집이다.”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말은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새벽 배달을 마치고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 한가운데, 탁자 위에 펼쳐진 임의경매 통지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박진수는 천천히 다가가 그것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가 주저앉았다.
손끝으로 종이 끝을 쓸었다.
눈앞이 흐려졌다.
‘나는… 남았다.’
그 말만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러나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는 알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