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제4화 원인불명
주말 아침, 박진수는 느지막이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천장 쪽을 흘긋 보았다.
눈에 띄게 번진 물자국이 시야를 가로질렀다.
“참나…”
투덜거리며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네, 1703호입니다. 지난번에 기사님 다녀가셨는데요, 상태가 더 심해졌어요.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상대방은 잠시 머뭇거렸다.
“아… 죄송합니다. 원인을 찾는 중인데 아직 명확하게 확인이 안 돼서요. 윗집에서도 문제 없다고 하고, 외벽 쪽은 확인 중입니다.”
“아니, 그럼 이 상태로 그냥 두란 말이에요?”
“저희도 최대한 빨리 확인해 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박진수는 씩씩거렸다.
“이게 신축이야? 이런 꼴을 보고 있으라고?”
아내 김수진이 다가왔다.
“여보,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괜찮아. 원인만 찾으면 돼.”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전주인한테도 한번 물어봐.”
순간 짜증이 치밀었지만, 더 이상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알겠어. 연락해 볼게.”
그는 핸드폰을 들고 매매계약서에서 전주인의 번호를 찾아냈다.
계약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그는 중개사무소에서 처음으로 전주인과 마주쳤다.
츄리닝 바람에 모자를 눌러쓴 젊은 남자가 포르쉐 911을 타고 나타났다.
쇼핑백 하나만 들고 들어왔고, 종이컵 커피를 홀짝이며 계약서를 넘겼다.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할 때 박진수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27세.
‘스물일곱?’
그는 계약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날 중개사가 슬쩍 말했다.
“강남3구에 몇 채 더 있는 거 같더라고요.
성동구는 그냥 투자로 하나 들고 있다가 이번에 정리하는 거래요.”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12년을 모아야 겨우 샀는데…’
씁쓸한 마음을 억누르며 핸드폰을 다시 바라보았다.
통화 연결음을 눌렀다.
길게 울린 뒤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리버바이성동 1703호 박진수입니다. 전에 매매하셨던 그 집인데요.”
“아, 네네. 무슨 일이시죠?”
“거실 쪽 천장에서 누수가 발생했는데 혹시 전에 이런 문제 없으셨나요?”
상대방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목소리는 낮고 태연했다.
말끝에는 묘하게 비웃는 듯한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누수요? 전 임차인 아저씨는 그런 말 없었던데?”
피식 웃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들렸다.
박진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정말요? 최근에 외벽이나 배관 공사 같은 건 없으셨고요?”
“네, 없었어요.
그리고 하자 책임은 인수인계 시점으로 끝나는 건… 혹시 아시죠?”
말투는 더 느긋해졌고, 박진수는 더 울컥했다.
“책임을 묻는 건 아니고, 혹시 알고 계신 문제가 있었던 건지 여쭤본 겁니다.”
상대방은 쿨하게 대꾸했다.
“그런 거 없어요. 우리 땐 멀쩡했으니까요.
혹시 문제 있으면… 뭐, 소송이라도 하시던가요?”
뚝.
전화가 끊겼다.
박진수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참… 저런 놈들이 왜 저렇게 뻔뻔하지?”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분을 삭이기 위해 민주당 지지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코털아저씨 영상이 링크된 게시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글을 썼다.
“요즘 리버바이성동 입주했는데 누수가 심하네요. 관리사무소도 원인 못 찾고 전주인도 나몰라라 합니다. 진짜 부동산 적폐 너무 심합니다.”
몇 분 지나자 댓글이 달렸다.
“한강뷰 아파트 사신다구요? 여기 계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ㅎㅎ”
“거기 대충 시세 20억 하는 거잖아요? 투기꾼 척결은 본인부터…”
박진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투기꾼이랑 같아?”
입술을 깨물며 댓글창을 닫았다.
저녁,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보, 이 상태로 계속 살아야 돼? 물이 계속 번지는데…”
“문제 금방 해결될 거야.”
“그렇게만 말하고 아무 조치도 없잖아. 뭐라도 좀 해봐.”
박진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고작 물 좀 샌다고 징징댈 일이야?”
아내는 눈을 붉히며 방으로 들어갔다.
박진수는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답답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꺼냈다.
코털아저씨의 최신 영상을 클릭했다.
“국민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부패 기득권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볼륨을 높였다.
강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우리가 바르게 돌려놓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자꾸만 거실 천장으로 향했다.
물자국은 더욱 선명해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