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제8화 젖어가는 풍경
비가 내린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창밖으로는 흐릿한 한강이 젖어 있었다.
거실 천장 물자국은 눈에 띄게 번졌다.
박진수는 출근 준비를 하며 슬쩍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별일 아니겠지.’
자신에게 되뇌었지만 시야는 자꾸 그곳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더 이상 말을 아끼지 않았다.
“여보, 오늘 낮에 가구 옮기자.
거실 장식장 뒷벽까지 젖었어.”
“장식장? 설마…”
박진수는 허겁지겁 장식장 뒤편을 살폈다.
벽지가 축축하게 젖어 손끝에 차가운 물기가 묻어났다.
“이게 대체 왜 이렇게까지…”
아내는 차갑게 말했다.
“계속 방치하더니 이렇게 된 거야.
지금이라도 이사 알아봐야겠어.”
“말도 안 돼. 이 집 사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당신 고집 피울 때가 아니야.”
말을 잇지 못한 채 박진수는 출근길에 나섰다.
지하철 안.
코털아저씨의 방송이 자동 재생됐다.
“국민 여러분, 외국 자본의 탐욕이 우리의 삶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워서 반드시 되찾아야 합니다!”
볼륨을 높이며 박진수는 이어폰을 꽉 눌렀다.
그러나 오늘따라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내가 정말 싸우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생각을 멈추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무실 분위기는 더 냉랭했다.
박대리를 비롯한 몇몇 동료들은 슬쩍 피하는 눈치였다.
구조조정 면담 이후 박진수는 회의에서 거의 발언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지나치던 김과장이 뒤돌아보며 동료에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박 차장님, 좀… 무섭지 않아?”
그 말이 고스란히 박진수의 귀에 들어왔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점심시간에도 혼자였다.
휴게실 구석에서 스마트폰을 켰다.
민주당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외국 자본의 탐욕과 싸우는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는 다급하게 글을 올렸다.
곧 몇 개의 반응이 달렸다.
“형님, 요즘 너무 그러시면 건강 해쳐요.”
“형님도 리버바이성동에 사시잖아요. 그 자체가 기득권 아닌가요?”
“그래도 가족 먼저 챙기셔야죠.”
박진수는 손끝이 떨렸다.
‘다들… 왜 이러는 거야.’
답글을 달까 망설이다가 그냥 화면을 꺼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내일부터 부동산 알아볼 거야.”
“뭐?”
“이대로는 못 살아. 오늘 장식장 뒷면 썩어가는 거 봤어?
다음은 아이 방으로 번질 거야.”
“그럼 우리가 이 집을 버리고 나가자고?
내가 리버바이성동까지 왔는데?”
아내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 고집이 우리한테 뭐가 되는데?
당신 커뮤니티에서 정치 글 쓸 시간 있으면 당장 가구라도 옮겨!”
박진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싸우고 있는 거야.
이 상황에서 물러설 수 없어.”
“싸운다니? 누구랑 싸우는데?
당신은 지금 우리랑 싸우고 있어.”
그 말에 박진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밤늦게 관리사무소에서 온 메일을 확인했다.
[1703호 누수 관련 경과 보고]
박진수는 자세히 읽어나갔다.
현재 누수 원인 정확한 파악을 위해 천장 일부 철거가 필요합니다.
윗집 배관 문제는 확인 결과 이상 없음으로 보고됨.
천장 철거 시 추가 비용 및 임시 거주 필요할 수 있음.
손에 쥔 스마트폰이 덜덜 떨렸다.
“철거? 대공사?
내 리버바이성동 거실 천장을 뜯어내라고?”
그 생각만으로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다.
‘이사? 임시 거처?
비용은?
내 자존심은?’
가뜩이나 구조조정 통보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절대 안 돼. 이건 전주인 책임이야. 그리고 윗집도 뭔가 숨기고 있는 거야.’
박진수는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윗집 연락처를 다시 확인했다.
며칠 전 관리사무소를 통해 겨우 확보했던 번호였다.
‘이번엔 가만 안 둬.’
그는 다짐하듯 숫자를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길게 울렸다.
한참 동안 신호음만 들려왔다.
거실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스마트폰을 켜서 민주당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우리는 투기 세력과 자본의 농간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을 바르게 돌려놓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글을 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스크롤을 내리는 손끝은 자꾸만 흔들렸다.
천장 쪽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괜찮아.
나는 싸울 거야.’
그렇게 되뇌며 박진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두 손은 이미 차갑게 젖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