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 제9화

한강뷰

제9화 스미는 것들

스마트폰에서 꺼지지 않는 물방울 알림음처럼 커뮤니티 새 댓글 알림이 또 떴다.

“형님, 가족이 먼저예요…”

박진수는 손끝으로 알림을 밀어냈다.
눈앞엔 천장 가장자리를 타고 번지는 불그스름한 얼룩이 더 또렷했다.

벽 쪽으로 가구를 옮기던 아내가 헝겊으로 벽을 닦아냈다.
손바닥만큼 벽지가 벗겨져 축축한 석고보드가 드러났다.

“여보, 더는 못 버텨. 나 애 데리고 나갈게.”

가만히 있던 박진수는 몸을 일으켰다.

“누수 원인도 안 밝혀졌는데 우리가 왜 나가야 하는데.
윗집에서 시치미 떼고, 전주인도 딴소리만 하는데.”

벽에 기대어 천장을 올려다보던 아내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럼 당신은 여기서 계속 물 떨어지는 거 보고 있을 거야?”

“내가 책임자들 다시 찾아가서 확실히 따질 거야.
내가 이 집 산 이유가 뭐야.”

“그래. 당신 혼자서 잘 해봐.”

아이를 품에 안은 아내는 가구 옆에 접어놓은 작은 여행가방을 손으로 밀었다.
그 장면이 박진수 눈에 깊이 박혔다.

그가 몸을 돌려 현관 쪽으로 걸어가며 통화 목록을 다시 열었다.

윗집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길게 이어졌다.

한참 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박진수는 목에 힘을 주었다.

“1703호 박진수입니다.
누수 문제로 여러 번 연락드렸던 거 기억하시죠.”

“아… 네. 근데 저희 쪽에선 이상 없다고 계속 말씀드렸잖아요.”

“계속 그런 식으로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지금 우리 집 천장 뜯어야 한다고 관리사무소에서 통보까지 받았는데.”

“저희도 기사님 확인하셨잖아요. 저희 배관 문제 없다고.”

“그럼 대체 어디서 물이 새는 겁니까.
윗집 아니면 누구 책임이에요?”

상대방이 잠시 뜸을 들였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잘 모르겠다니요.
지금 장식장 뒤 벽지가 다 젖어서 떨어지고 있고, 애 방으로도 번지고 있어요.”

상대방은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

“죄송한데요, 저희는 더 확인할 게 없어요. 관리사무소랑 다시 얘기해 보세요.”

뚝.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박진수는 손에 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 손으로 이번엔 전주인 번호를 눌렀다.

벨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리버바이성동 1703호 박진수입니다.”

“아… 또 뭡니까.”

“지금 천장 뜯어야 합니다.
관리사무소에서도 원인 못 찾았다고 하는데, 혹시 이 집에 원래 문제 있었던 거 숨긴 거 아닙니까?”

전주는 짧게 웃었다.

“웃기시네. 내가 뭘 숨겨요. 우리 땐 멀쩡했다고 했잖아요.”

“지금 물이 벽 타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당신 책임 피할 생각 마세요.”

“하, 그건 새로 생긴 문제겠죠. 내가 무슨 초능력자에요?
그쪽에서 알아서 처리하세요.”

뚝.

통화음이 사라졌다.

바닥으로 시선이 떨어졌다.
눈에 들어온 건 흐릿한 물자국과 방울져 떨어진 작은 웅덩이.

그 자리에 가만히 주저앉았다.
손으로 물을 한 번 쓸어냈다.

얼마나 지난 뒤였을까.
문득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방 안에서 들렸다.

박진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복도 쪽으로 걸어갔다.

문틈 너머로 아내가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괜찮아, 우리 이사 가자.
아빠가 조금 힘든 거야.”

그 말이 가슴에 깊게 박혔다.

가구 옆으로 돌아와 스마트폰을 꺼냈다.

민주당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투기 세력과 자본의 농간에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글을 올린 뒤 한참을 화면만 바라봤다.

얼룩진 벽과 천장에서 또 한 방울의 물이 떨어졌다.
고개를 젖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말끝이 마음속에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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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yu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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