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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뷰
제2화 우리가 기다려온 시대가 온다
새벽 6시 30분.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기 몇 분 전, 박진수는 이미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희뿌연 새벽빛이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앉아 멍하니 벽시계를 바라보다가, 어젯밤의 작은 광경이 문득 떠올랐다.
거실 천장 모서리.
그곳에서 맺혔던 작은 물방울 하나.
“입주 청소 때 뭐 제대로 안 닦은 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애써 넘겼다.
샤워를 마치고 양복을 입은 뒤, 출근 채비를 갖췄다.
현관문을 나서며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스마트폰을 열고 유튜브 앱을 실행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익숙한 채널이었다.
<코털아저씨의 민주주의 바로 세우기>.
박진수는 손끝으로 영상을 눌렀다.
“오늘 아침 속보! 민정운 후보, 투기세력 박살낼 정책 발표”
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지하철역까지 걷는 동안, 코털아저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국민 여러분! 올바른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싸움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투기 공화국을 끝장내야 합니다!
민정운 후보님은 ‘올바른 대한민국, 바르게 돌려놓겠습니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코털아저씨의 목소리에 분노가 실렸다.
“반면에 여러분, 상대 후보 김정희는 어떤 인간입니까?
희대의 개새끼입니다, 개새끼!
이 자는 아들 취업 비리에 성비위까지 터져 나왔지만, 일체의 대답도 못 하는 파렴치한 소시오패스 아닙니까!”
이어폰 너머로 쏟아지는 그 거친 목소리에 박진수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맞아. 저런 놈이 대통령 되면 안 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하철 좌석에 앉은 박진수는 영상을 계속 재생했다.
“올바른 대한민국, 바르게 돌려놓겠습니다.”
화면 하단의 슬로건이 눈에 박혔다.
그는 입술을 달싹이며 몇 번이고 슬로건을 따라 중얼거렸다.
“올바른 대한민국, 바르게 돌려놓겠습니다.”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민정운 후보의 목소리가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번엔 반드시 바뀐다. 우리 같은 사람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올 거야.”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
이어폰은 잠시 뺐다.
도착하자마자 다시 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목소리가 중독적이었다.
경영관리팀 사무실에 들어서자, 몇몇 동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전날 있었던 민정운 후보의 TV토론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어제 민 후보 토론 봤어요?”
누군가 물었다.
박진수는 기다렸다는 듯 끼어들었다.
“봤지! 정말 감동이더라. 슬로건 들었어? ‘올바른 대한민국, 바르게 돌려놓겠습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 얼마나 기다려온 말인지 몰라.”
그의 목소리에 열기가 섞였다.
주변 반응은 예상보다 차분했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은 묘하게 피로해 보였다.
점심시간 후 사무실로 돌아온 박진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켰다.
민주당 시민운동 카톡방에는 수십 개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그는 코털아저씨 영상 링크를 재빠르게 올렸다.
“이거 다들 보셨죠? 감동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돌려놓을 때입니다!”
몇몇 ‘좋아요’ 이모티콘이 올라왔다.
그러나 평소 활발하던 몇몇은 그날따라 반응이 없었다.
“왜 반응이 없지? 요즘 다들 정치 의식이 흐려졌나.”
괜히 기분이 상한 듯한 마음을 달래려 다시 코털아저씨의 다른 영상을 클릭했다.
퇴근길.
박진수는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코털아저씨는 이번엔 검찰과 언론을 향한 거친 비판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맞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의 머릿속에는 딸 소연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 작은 얼굴을 보며 결심한 바가 있었다.
“이제는 다르게 살아야 해. 바르게.”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다.
식탁에 앉은 그는 자연스럽게 거실 TV를 켜고 유튜브를 연결했다.
코털아저씨의 최신 방송이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아내 김수진이 주방에서 슬쩍 말했다.
“여보, 요즘 그 유튜브 너무 자주 보는 거 아니야?”
박진수는 눈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이게 진짜 뉴스야. 여기서라도 현실을 알아야지.”
아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미묘한 그늘이 드리워졌다.
저녁 식사 후, 딸 소연은 신나게 학교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박진수는 휴대폰으로 시민운동 카톡방에 또 다른 코털아저씨 영상을 공유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아내는 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거실에 홀로 앉아 한강 야경을 바라보던 박진수는 문득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톡… 톡…’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 모서리에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방울은 또르르 흘러내렸다.
“입주 청소 때 뭐 제대로 안 닦은 건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입주 청소 업체를 부른 걸 떠올렸다.
“그때 분명 청소할 때도 조금 허술해 보이더니… 뭐, 별일 아니겠지.”
박진수는 다시 시선을 거실로 돌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왠지 영상 소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볼륨을 조금 더 높였다.
“올바른 대한민국, 바르게 돌려놓겠습니다.”
그 슬로건이 다시 귀에 또렷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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