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 제3화

한강뷰

제3화 균열의 시작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친 박진수는 언제나처럼 현관문을 나섰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켰다.
코털아저씨의 최신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국민 여러분! 민정운 후보님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투기 공화국을 무너뜨릴 진짜 주자가 누군지 이제 다들 아시겠죠?”

박진수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럼. 이번엔 우리가 반드시 승리해야지.”

스스로에게 되뇌며 발걸음을 옮겼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묘한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
팀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혹시 들었어요? 이번에 또 희망퇴직 얘기 나온다던데.”

“진짜? 지난번에 한 번 정리했잖아.”

“이번엔 좀 더 크게 할 거라는 말이 있어요. LJM 파트너스에서 지시가 내려왔다고…”

그 대화를 엿들은 박진수는 얼굴을 굳혔다.

“LJM? 그 박민석 회장 그쪽?”

본능적으로 불쾌한 감정이 치밀었다.

“또 외국 자본이 이 나라 회사를 휘두르는 거지. 이런 게 나라냐.”

속으로 씹듯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오전 내내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메일을 확인하다가도, 엑셀 시트를 열어놓고서도 자꾸만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도 나는 괜찮겠지. 경영관리팀, 그것도 파트너사 관리 쪽인데…”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괜찮아. 내가 리버바이성동 주민인데 뭘.”

혼잣말을 내뱉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점심시간.
사무실 동료 박대리가 다가왔다.

“형, 이번에 리버바이성동 갔다며? 리버뷰 죽이던데.”

박진수는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거실에서 한남대교 다 보여. 야경이 끝내줘.”

“오… 역시 형은 진짜 성공하셨네.”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약간의 허전함이 일었다.

‘성공…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은 곧 사라졌다.
그는 다시 허세 어린 미소를 띠었다.

퇴근 무렵.
지하철 안에서 박진수는 코털아저씨의 영상을 또 들었다.
이어폰 볼륨을 높이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국민 여러분! 우리가 지금 싸우는 상대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닙니다.
김정희 같은 적폐 중의 적폐! 그 아들 취업비리, 성비위 사건! 절대 용서받아선 안 됩니다!”

“맞아. 우리가 반드시 막아야 해.”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정신 차려야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 아내 김수진이 거실에서 천장을 가리켰다.

“여보, 저기… 또 물방울 맺혀 있던데.”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지난번보다 물자국이 조금 더 번져 있었다.

“입주 청소 문제겠지. 원래 새집엔 이런 일 가끔 있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쿡쿡 찔렸다.

“관리사무소에 한번 문의해 보는 게 어때? 그냥 두기엔 좀…”

짜증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괜찮아. 괜히 호들갑 떨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아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뚜렷한 걱정이 어렸다.

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냈다.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네, 저 리버바이성동 1703호인데요. 거실 천장 모서리 쪽에 물방울이 좀 보이는데요.”

관리사무소 직원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1703호요? 최근까지 누수 신고는 없었는데요. 혹시 다른 원인일지도 몰라서요. 내일 기사님 한번 보내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지만 찜찜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별일 아니겠지.”

혼잣말로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시선은 자꾸만 천장 쪽으로 향했다.

이튿날 아침.
거실에 나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물방울이 조금 더 커진 듯 보였다.
애써 시선을 돌렸다.

스마트폰을 켜고 유튜브를 실행했다.
코털아저씨의 최신 영상이 재생되었다.

“국민 여러분! 올바른 대한민국, 바르게 돌려놓겠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 끝까지.”

주먹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사무실 복도에서는 구조조정 이야기가 더 노골적으로 퍼지고 있었다.

“이번엔 희망퇴직 아니라 구조조정 형태로 갈 거래.”

“진짜야? 팀장급도 예외 없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설마… 내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난 괜찮아. 홈바이홈 차장인데.”

그러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다.
아내가 말했다.

“관리사무소에서 기사님 다녀갔다고 메모 남겼더라.”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뭐래?”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대. 윗집 수도관 문제일 수도 있고, 외벽에서 들어온 물일 수도 있대.”

한숨을 쉬었다.

“크게 신경 쓰지 마. 별일 아니야.”

그렇게 말했지만, 속은 편치 않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한강 야경을 바라보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물자국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아래 작은 물방울이 또르르 떨어졌다.

“별일 아니겠지. 별일 아니야.”

혼잣말로 되뇌었다.
그러나 그 말조차 점점 공허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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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yu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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