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 제5화

한강뷰

제5화 붉은 종이 한장

월요일 아침, 박진수는 기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회사로 향했다.
주말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건 천장의 물자국도, 민주당 커뮤니티 댓글도 아니었다.

희망퇴직, 구조조정.

그 단어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손에 땀이 맺혔다.
이어폰에서는 코털아저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국민 여러분! 우리가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투기 세력, 부패 기득권, 모두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래, 싸워야지.”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속은 불안으로 뒤덮여 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동료들의 분위기는 전과 달랐다.
속삭임이 더 잦아졌고, 모니터 너머로 쏠리는 시선이 눈에 띄었다.

박대리가 슬쩍 다가왔다.

“형… 그거 들었어요? 오늘부터 구조조정 면담 시작한대요. 인사팀에서 리스트 뽑았대.”

“진짜야?”

목소리가 의도치 않게 떨렸다.

“응. 아침에 인사팀에 있던 친구가 그러더라. 대상자한테는 오늘 중에 개별 통보 간대.”

박진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 엑셀 파일의 숫자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점심 무렵, 사무실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복도에서 인사팀 박주임과 마주쳤다.

박주임은 눈길을 피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작은 제스처가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켰다.

‘설마… 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오후, 박진수의 메일함에 ‘구조조정 면담 안내’라는 제목의 메일이 도착했다.

[면담 일시 : 금요일 오후 2시 / 장소 : 인사팀 회의실]

그는 모니터 앞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휴게실로 내려갔다.
스마트폰을 꺼내 민주당 시민운동 카톡방에 들어갔다.

“적폐 자본에 맞서 싸우는 여러분, 지금 우리는 더 단결해야 합니다.”

누군가 올린 문장에 박진수는 불현듯 댓글을 달았다.

“우리 회사도 지금 외국 자본에 먹히고 있습니다. 구조조정 강행 중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싸워야 합니다!”

몇몇 ‘좋아요’가 달렸지만, 이전처럼 열띤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한두 명이 댓글을 남겼다.

“형님, 요즘 좀 예민하신 듯… 건강 먼저 챙기세요.”

“형님, 리버바이성동 한강뷰 사셨다면서요? 조금 조심하셔야…”

박진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동지들이냐…”

화면을 끄고 자리로 돌아왔다.

저녁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거실에서 박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오늘 관리사무소에서 또 연락 왔어. 아직 원인 못 찾았대.”

“그래? 알겠어. 내가 내일 다시 얘기해볼게.”

무심하게 답하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아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 우리 진짜 이 상태로 계속 살 수 있을까? 나 솔직히 너무 스트레스 받아.”

“별일 아니라고 했잖아.”

“그렇게 말만 하고… 회사도 요즘 불안하다며? 당신 표정이 다 보여.”

박진수는 움찔했다.

“그건 내 일이야. 집에서는 좀 조용히 넘어가자.”

아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눈빛은 냉랭했다.

늦은 밤, 박진수는 홀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천장 물자국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쩌면 더 번진 것 같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들어 민주당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코털아저씨의 최신 방송이 올라와 있었다.

“국민 여러분! 이번 싸움은 우리 생존의 문제입니다! 올바른 대한민국, 반드시 우리가 바르게 돌려놓겠습니다!”

볼륨을 높였다.
그 강한 목소리가 불안과 분노를 덮어주길 바랐다.

그러나 오늘따라 그 말들이 허공을 맴도는 듯했다.

눈길은 자꾸만 인사팀에서 온 메일 제목으로 향했다.

‘구조조정 면담 안내’
붉은 종이 한 장처럼 눈에 박혀 있었다.

“나는 괜찮을 거야.
나는 리버바이성동에 살고… 홈바이홈 차장이야.”

중얼거리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나 그 말조차 점점 공허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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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yu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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