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제10화 그믐달
박진수는 보고서 프린트물을 손에 쥔 채 복도에 서 있었다.
잔뜩 굳은 얼굴로 박진수를 바라보는 김이사의 시선이 등 뒤까지 파고들었다.
“이거 다시 해와요.
지금 이게 보고서라고 볼 수 있는 거에요?”
말 끝이 가시처럼 박혔다.
회의실로 들어가는 김이사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박진수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손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왜 이렇게 되는 거지.’
눈앞이 흐릿했다.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등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형, 오늘 시간 돼요?”
조한결이었다.
같은 팀 후배였다.
입사 2년차, 전주 출신.
서울로 올라와 회사 근처 원룸에서 혼자 살며 매사에 싹싹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평가받던 청년이었다.
입사 초기부터 박진수를 잘 따랐고, 종종 둘이 술 한잔하거나 식사를 함께하곤 했다.
항상 예의를 철저하게 지키는 태도는 박진수로서도 흐뭇한 후배였다.
박진수는 한동안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유난히 습하고 탁한 공기가 흐르던 작은 포장마차에 둘은 마주 앉았다.
조한결이 술을 따르며 말했다.
“형… 요즘 회사 분위기 안 좋잖아요.
괜찮으세요?”
박진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괜찮은 척하는 거지.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아.”
잔을 비웠다.
“내가 뭐 그렇게 잘못했나 싶어.
그저 내 정치 성향 밝히고 해야 할 말 하고 살았다 이거뿐인데.”
조한결은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채웠다.
“그래도 형은 그동안 열심히 해오셨잖아요.”
박진수는 빈 잔을 내려놓았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결국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저었다.
술이 오르면서 말이 풀어졌다.
“내가 12년을 모아서 이 집 샀어.
리버바이성동 한강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이제 마용성 한강뷰 사는 사람이야.”
조한결은 조용히 잔을 채웠다.
“형, 진짜 대단하세요.”
박진수는 술잔을 들고 중얼거렸다.
“근데 요즘엔… 뷰만 보고 산 게 아닌가 싶어.
이제는 천장에서 물 떨어지고, 애는 못 살겠다고 나가고….”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래도 버텨야지.”
술기운이 한층 더 오르자 박진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한결아, 너도 알아둬라.
돈은 모아야 돼.
나도 12년 동안 피땀 흘려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너도 열심히 모으면 언젠가 한강뷰 아파트 살 수 있어.”
조한결은 잔에 소주를 가득 따르며 웃어 보였다.
“네, 형.
맞습니다.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잔을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박진수는 흐뭇하게 잔을 받았다.
“그래, 그게 사람 사는 거야.”
잔을 비웠다.
속으로는 약간의 허전함과 피로가 퍼져갔다.
‘그래…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거지.’
그러나 마음 한쪽에서는 희미한 불안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잔이 몇 순배 더 돌았다.
조한결이 휴대폰을 꺼내 무심코 화면을 넘겼다.
박진수는 흐릿한 눈으로 그의 화면을 슬쩍 바라보다가 멈췄다.
커뮤니티 화면이었다.
상단에 ‘코인바닥’이라는 로고가 보였다.
그 아래, 닉네임이 잠깐 스쳤다.
‘그믐달’
박진수는 술기운에 그 이름을 뚜렷하게 기억하진 못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어감이 머릿속에 남았다.
‘그믐달…?’
입술을 달싹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조한결은 눈치채지 못한 채 화면을 넘겼다.
박진수는 억지로 평정을 유지하며 잔을 비웠다.
눈을 뜨자 천장이 흐릿하게 보였다.
박진수는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젯밤 장면이 떠올랐다.
‘그믐달…? 코인바닥?’
몸을 일으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브라우저를 열고 ‘그믐달 코인바닥’을 검색했다.
곧 엄청난 글들이 쏟아졌다.
“국내 전설적 코인 투자자.”
“선물거래 수천억 수익 인증.”
“추정 자산 2000억 원 예상”
박진수는 손에 쥔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조한결이… 그 그믐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