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에필로그 – 어느 날의 한강변
새벽 공기가 싸늘했다.
박진수는 손목시계를 흘끗 바라봤다. 네 시 반.
가방 속에는 아직 배달 건 하나가 남아 있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무게였다.
몸도, 마음도.
리버바이성동으로 돌아가는 길. 배달을 마친 뒤였다.
관리사무소 우편함에 꽂힌 통지서를 봤다.
[임의경매 낙찰자 선정 완료 / 점유자 퇴거 요청 예정 안내]
봉투는 뜯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이미 법원에서 낙찰 결과를 확인한 지 며칠이 지났다.
퇴거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아직 버티고 있었다.
팔 것도, 갚을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냥 버티고 있었다.
쿠팡 배달로 벌어들이는 돈은 생활비로 빠듯했다. 대출 이자 연체는 이미 불어날 만큼 불어났다.
아내에게는 여전히 연락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핸드폰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제는 그녀와 딸의 근황도 거의 모른다.
그게 더 편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루하루를 버틸 수 없었다.
그날 새벽, 잠시 한강변 난간에 기대섰다.
손끝이 저려오는 차가운 강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스마트폰을 꺼냈다.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이상훈.
피드에 새 게시물이 떠 있었다.
[아이 첫 국제학교 등교 / KL 새 집에서]
아이의 작은 교복 차림 사진, 쿠알라룸푸르 고층 콘도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파란 하늘.
밝게 웃는 아내의 얼굴도 담겨 있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잠시 멈췄다.
그런데도, 스크롤을 멈출 수는 없었다.
문득 카톡 알림이 떴다.
회사 동료가 보낸 코인바닥 커뮤니티 기사 캡쳐였다.
[조한결 a.k.a 그믐달, 두바이 블록체인 VC 행사에서 단독 인터뷰]
사진 속 조한결은 고급 양복 차림으로 투자자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짧은 인터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리스크는 늘 있지만, 지금은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박진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자유.
그 단어가 다시 목에 걸렸다.
스마트폰 화면을 꺼버렸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그는 원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퇴사하고 배달을 시작하면서 가끔, 아주 가끔 피웠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성냥불을 붙이며 손끝이 약하게 떨렸다.
담배 연기가 어둠 속으로 퍼져 나갔다.
리버바이성동 건물이 저 멀리 어스름 속에 보였다.
이제 그곳도 곧 비워야 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박진수는 담배를 길게 빨았다.
입술 끝에 쓴맛이 남았다.
“나는… 남았다.”
입술 사이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모르겠다.
그저 또 하루를 버텨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믿어야만 했다.
담배가 다 타들어갔다.
그는 꽁초를 난간 옆 재떨이에 눌러 껐다.
한참을 더 서 있다가 가방을 다시 메었다.
스마트폰을 켰다.
새 배달 알림이 떠 있었다.
그는 가방을 고쳐 메고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새벽은 여전히 차가웠고, 길은 아직 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