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제7화 탈출하는 자
구조조정 면담 후 며칠이 지났지만, 박진수는 여전히 평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코털아저씨의 방송도 예전처럼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떤 날은 한참 듣다가 도중에 꺼버리곤 했다.
사무실 분위기도 달라졌다. 동료들은 박진수에게 말을 걸 때 조심스러워졌다. 회의 시간에도 예전처럼 의견을 활발하게 내지 못했다.
복도에서 마주친 박대리조차 어색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마치 유령 취급을 당하는 것 같군.’
그 생각이 마음 한켠을 아프게 찔렀다.
그런 그에게 모처럼 연락이 온 것은 동기 이상훈이었다.
“오늘 저녁에 한잔 어때? 나 할 얘기 좀 있어.”
반가운 마음에 박진수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상훈. 회사 동기 중에서도 그가 가장 부러워했던 인물이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운 좋게 송파구 모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그때부터 ‘신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뒤 오랜 기간 별다른 투자 없이 묵묵히 보유하다가 아파트 값이 폭등하면서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나도 너처럼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 박진수가 술자리에서 종종 내뱉던 말이었다.
그 이상훈이 뜬금없이 먼저 술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저녁, 을지로의 작은 주점에서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초반엔 별다른 얘기 없이 일상적인 잡담만 오갔다. 그러다 소주 한 병이 비워질 즈음, 이상훈이 슬쩍 입을 열었다.
“나 송파 아파트 팔았어.”
박진수는 술잔을 든 채 손을 멈췄다.
“팔았다고? 송파 아파트를?”
“응. 지난주에. 25억에 매매계약 했어.”
그 말에 박진수의 속이 울컥했다.
“25억이나 받았다고?”
이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금 말레이시아 MM2H 은퇴비자 준비하고 있어. 쿠알라룸푸르에 콘도 하나 계약했고, 미국 배당주 15억 정도 넣어두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박진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엔 과거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이상훈의 청약 당첨 소식이 사무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날. 그때 모두가 그를 부러워하며 ‘신의 아들’이라 불렀다.
‘나는 12년을 악착같이 모아서 겨우 리버바이성동 한 채 샀는데…’
잔을 비우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대단하다. 나는 감히 그런 결정 못 해.”
이상훈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나도 고민 많이 했어. 근데 애가 커가는데, 교육 문제도 그렇고… 솔직히 여기서는 답이 안 보여서.”
그 말이 박진수의 가슴을 찔렀다.
그때 문득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도 고민해야 하는 거 아냐?”
그 말 속에 담긴 뜻이 이제서야 뚜렷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애가 크면 국제학교 문제, 교육비, 삶의 질. 말레이시아로 간다면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들.
그러나 박진수는 애써 허세 섞인 웃음을 지었다.
“나는… 아직은 그런 생각 없어. 리버바이성동 한강뷰에서 살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잖아. 강남3구야 못 미쳐도, 뷰는 내가 앞서지. 이 창 너머 한강은 적어도 내 거니까.”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이상훈은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
“…….너무 버티지 말고, 가족 생각도 좀 해봐.”
그 말에 박진수는 대꾸하지 못했다.
술잔만 연거푸 비웠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오늘 상훈 씨 만났다며?”
“응.”
“들었어. 그 집 팔고 말레이시아 간다던데.”
박진수는 겉으로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각자 사정이 있으니까.”
아내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도 한번 고민해보는 게 어때? 국제학교 문제도 있고… 솔직히 여기 이렇게 계속 사는 것도 부담스럽고.”
박진수는 움찔했지만 곧 허세 섞인 말로 눌렀다.
“우린 이제 대한민국 1%야. 리버바이성동 살잖아. 그 정도 자부심은 있어야지.”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실 천장 모서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물자국이 더 짙어져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그 자부심이 우리 애한테 도움이 되진 않아. 당신, 요즘 자신한테도 거짓말하는 것 같아.”
박진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에 반박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스마트폰을 켜서 민주당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우리는 투기 세력과 자본의 농간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을 바르게 돌려놓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글을 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스크롤을 내리는 손끝은 자꾸만 흔들렸다.
천장 쪽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